애써 받쳐도 한쪽 어깨는 내 어깨가 아니고
한마음도 내 마음이 아니다
새들은 꼭 한꺼번에 울어 그 소리 따라가지 못하게 하더니
바쁜 일은 겹으로 와 너를 놓치게 했다
그렇다고 뭐라 말할 수 있을까
헛된 기대는 또 다시 너여서
쨍한 날에도 너 닿은 한쪽은 금세 울고 만다
이규리, 국지성 호우 中
내 집은 왜 종점에 있나
늘
안간힘으로
바퀴를 굴려야 겨우 가닿는 꼭대기
그러니 모두
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
박소란, 주소
당신 생각을 또 했지
당신이 점점 커졌지 방문을 열 수 없었지
팔꿈치가 문에 걸릴까봐
당신은 자꾸 커졌지 갑갑하게 숨을 쉬기
김박은경, 당신의 코트 빛으로 얼굴은 물들어 버린 채 中
한번도 본 적 없는 이를 문장으로 문장으로 스치다가도
눈물이 나 그가 아니면 안되겠다 하였다
사랑하였다
무의미였다
이병률, 고양이 감정의 쓸모 中
마음가에 한참 너를 두었다
네가 고여있다보니
그리움이라는 이끼가 나를 온통 뒤덮는다
나는 오롯이 네 것이 되어버렸다
서덕준, 이끼
너무
세게 쥐었다
그땐
몰랐으니까
바람에
날릴까 봐
파도에
쓸릴까 봐
자두처럼
멍들었지
움켜쥐면
쥘수록
빈손
뿐이란 것을
바람에
흩어지는
모래를 보고
알았지
박장순, 사랑
상처의 몸속에서는 날마다
내 몸에서 풀려난 괴로움처럼 눈이 내리고
꽃 따위로는 피지 않을
검고 단단한 세월이 바위처럼 굳어
살아가고 있지
이승희, 상처라는 말
아프면 아픈 채로 사랑해야 한다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헹가래의 가득한 기쁨처럼 네게 나는
늘 깨어 있는 새벽이 되고 싶었다
손중일, 내가 널 사랑하는 이유 中
물이 흘러가는 것에도 길이 있고
마음이 흘러가는 것에도 길이 있네
당신이 그리워 당신에게로 흘러가는
물길 같은 내 마음이여
조용히 고여 당신을 비추기도 하고
때로는 출렁이다 당신을 조각내기도 한다
물이 흘러가는 것에도 길이 있고
마음이 흘러가는 것에도 길이 있네
호수 같은 당신께로 날마다 자맥질하는
바다 같은 당신께로 온전히 주고야 마는
물길 같은 내 마음이여
이정하, 물길
길을 가다 알았다
아무것도 아닌 길에서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검고 낮은 돌들이 화단과 보도를 나누고
그 돌 위에 벚꽃이 내려와 단단히 붙어 있는
밤이었다
무엇을 좋아해야 할까 사람을 좋아해야 할까
지금 이, 어느 한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을 좋아해야 할까
나는 대답을 찾으려 했지만 그보다는 밤이 더욱 짙어지기만을 바랐다
감정을 다 소진시킬 것인지 생각하다 그것이
당장 해치울 수 없는
산더미 같은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 힘에 겨울 때까지 걸었다
이병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中
어떤 느낌들이 있다
문 밖으로 나가는 누군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살면서 그 사람과 한 차례는 더 마주칠 것 같다는 느낌
붙잡을 모질음도 붙잡힐 안간힘도 쓰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단어들은 그렇게 내 몸속에서 빠져나갔다
기다리고 품고 헤어지고 또 한 시절을 헤메다가
처음인 양 다시 스칠 것이다
모든 시집은 단어들의 임시 거처다
오은,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中
밤이여. 더이상 나를 위로하지 마라
나는 이제 비에 젖은 별빛처럼 지쳤다
박정대, 7인 마법사와 양인대작 中
기다리는 일은
허공을 손톱으로 조심조심 긁는 일
어디까지 파였는지
상처가 깊은지
가늠할 수도 없이
이상하다
밤마다 휘어진 척추부터 꼼꼼히 흔들리는
누군가의 숨죽인 흐느낌이 들린다
오래 망설이는 사이
귀가 파래진다
박연준, 환청 中
사람마다 옆구리께엔 절벽이 있다
파도가 할퀴고 간 상처의 흔적이 가파를수록
풍란 매운 향기가 난다
너와 내가 섬이다
아득한 거리에 상처의 향기로 서로를 부르는
복효근, 섬 中
그댈 이웃하지 않고는
불우할 수 밖에 없으니
돈이나 맘이 좀 그러면
눈길로라도 도와주오
태재, 불우이웃
살고 싶어서
가만히 울어 본 사람은 안다
목을 꺾으며
흔적 없이 사라진 바람의 행로
그렇게 바람이 혼잣말로 불어오던 이유
이쯤에서 그만
죽고 싶어 환장했던 나에게
끝없이 수신인 없는 편지를 쓰게 하는 이유
정수리가 전등에 닿을까봐 창을 열 수 없었지
누군가 알아챌까봐
그 틈에 창밖으로 당신 발가락이라도 빠져 나갈까봐
내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지
시작했지
그만 커지라고 소리쳤지만 당신에게는 들리지 않았지
내 손짓도 보이지 않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