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투어가 추천하는
태항산의 관광은 셔틀카트로(일명 빵차) 이동하면서 경치를 즐길수 있는 지역에 정차하여 관광 하는 코스이다 태양산의 절경은 사진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 하리라 생각한다.
이와같은 빵차를 타고 태항산을 구석 구석 누빈다.
빵차에서 내려주지 않으면 아름다운 경치를 찍을수 없다는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이번에 평보청운에서 내려 다시 찰깍..
또 다시 빵차로달려 몽환지곡에 내립니다.
몽환지곡이라 뭐라 설명을 했는데.. 실물을 보면 쉽게 해석이...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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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읍산 산행
행복을 만들어보자! 행복이 별거더냐!!
그렇지만 누구나 보이지 않는 행복을 갈구(渴求)한다.
행복은 빨강 노랑 파랑의 고운 색깔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벼슬이 높다고 행복한 것은 더욱 아니다.
단, 내 몸 건강하고 근심과 걱정 없고 욕심 내려놓으면 행복은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것이 행복이 아니던가!
인간은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근심과 걱정이 있다.
그래서 사람은 근심과 걱정이란 멍에를 짊어지고 긴장하며 살라는 하늘의 명령인 것 같다.
그 명령을 누가 거역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그 숙제를 풀기 위해 사는지도 모른다.
그 반면 신께서는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란 묘한 감정의 세계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행복이란 아름다운 허구의 세계를 순간적으로 맛볼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살면서 기쁜 일이 생기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전율이 몸에 흐른다.
또 즐겁거나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땐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때론 아름다운 웃음이 나온다.
이때 잠시 멍에를 벗고 행복이란 세계가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필자도 그러한 행복을 맛보고 싶다.
행복을 맛보려고 산행을 하기로 했다.
양평에 있는 추읍산으로 산행을 하러 간다.
오늘갈 산에는 어떠한 보물이 있을지 호기심이 발동한다.
맑고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바다를 공중에 만들어 놓았다.
추읍산으로 가기 위해 "원덕역"에 내렸다.
원덕역에서 추읍산 입구까지는 약 1km라고 이정표에 써 놓았다.
올라가는 길은 예사롭지 않게 가파르다.
땀을 흘리며 힘들게 걷는 것을 새들이 안타깝게 생각했는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반기며 바람은 땀을 거두어 시원하고
엔돌핀이 돌며 산의 정기가 몸속으로 돌기시작한다
추읍산(582m)은 양평군 용문면과 개군면 경계를 이룬다.
북쪽 흑천 건너 용문산을 바라보고 읍(揖)하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추읍산으로...
이산은 처음부터 깔딱 고개로 이루어진 산이다.
다행히 암능(岩陵)이 없고 흙 산이라 위험한 곳은 없다.
그러나 경사가 심해 등산하기 만만치 않은 산이다.
왜 이 고생을 하며 산에 올라갈까?
행복을 만들기 위해 산행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깔딱고개를 넘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행복은 고생해서 사는 것만은 아닐진대 왜 나는 이 고생을 할까?
아니다.
이것은 고생이 아니다.
단, 진주알을 찾기 위해 구슬땀을 흘릴 뿐이다.
*읍(揖)= 두 손을 맞잡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공손히 구부렸다가 몸을 펴면서 손을 내린다.
배(拜)보다는 가벼운 인사하는 예(禮)의 하나다.
이산의 8부 능선까지 올라왔다.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하지만 지쳐 간다.
사력을 다해서 걸어야 힘이 들어도 행복을 잡으려면 이 정도 고생은 감수해야~
고생 끝에 낙이 있다고 정상을~
호흡을 가다듬고 기쁨의 입맞춤을 했다.
머리속은 황홀하고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잠시 후 가슴을 가다듬고 사방을 바라보았다.
남한강물이 넘실넘실 흐르고 남한산성이 보인다.
강 건너엔 여주시가 보이고 앞에는 용문산이 위험을 드러내고 있다.
검단산과 예봉산 천마산까지 보이며 무엇보다 아름다운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진다.
정상과의 대화를 마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음미한다.
이렇게 자연의 움직임을 바라보노라면 마냥 신비롭기만 하다.
또한 산은 삶에 지친 나를 품어주며 용기를 인내를 주니 이것이 여유의 복이다.
옛날에는 추읍산 정상을 ‘마당재’로 불렸다 한다.
여주에 세종대왕 능을 쓸 때 묏자리를 파고 보니 땅속에서 물이 솟아올랐다.
이에 지관을 잡아 가두려 하자, 지관은 “나를 잡지 말고 칠읍산 마당재에 우물을 파도록 하시오.
그러면 마당재에서 물이 나오고 그 대신 세종대왕 능 자리의 물기가 싹 가실 것이오”라고 말했다고 해서 마당재로 불렸다는 설도
이 마을에 사는 주민들에 따르면 추읍산 정상에 물이 마르지 않는 샘터가 있었으나 묘하게 6·25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추읍산은 풍수적으로 산세가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으로 정상에서 사방으로 산을 에워싼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조망이 일품이다.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을 말함
남서쪽 내리와 남동쪽 주읍리 일원은 수령이 400~500년가량 된
산수유(山茱萸)나무 1만5,0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는 산수유 마을로 유명하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4월 초 노란 산수유꽃이 온 마을을 뒤덮을 때를 맞춰‘개군 산수유축제’가 열린다.
주읍리(注邑里)는 국립 지리 정보원 발행 지형도에 나오는 행정지명이다.
이 마을은 봄이면 온 마을이 노란색으로 물들고,
가을이면 새빨간 산수유 열매로~
산수유 마을 주읍리 유래를 알림판에 의해 적어본다. 원래 여주군 개군산면 주읍이었으나
1914년 일제시대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주읍으로 변경되었다.
마을 뒷산인 주읍산은 정상에서 보면 일곱 고을이 보인다고 하여 칠읍산이라고도 불리고
일곱 파지의 보물이 있다 하여 칠보산이라고도 불렸다.
속설(俗說)에 따르면, 명지관(名地官)이 마을 뒷산에 올라 보니
이 산이 용문산에 뒤쫒는 형상이므로 추읍(趨揖)산이라 명명했다.
1995년 8월 15일 이후로는 주읍산에서 원 지명인 추읍산으로 바꾸어 국토지리정보원에 등록되었다.
1963년 1월 1일부터 여주군에서 양평군에 편입되었다.
이 지역의 각 속 지명은 다음과 같다.
고사터, 서낭데이, 섬바위, 솔꾸제이, 신당이고개, 언덕말, 오야골, 지정고개, 집 너머 고개, 화랑골,
가자골, 너러석거리, 등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속설에 의하면 조선 세종대왕의 영릉 터를 여주에 조성하면서 당시에 묘터에서 물이 나와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노승이 산수유마을 뒷산인 추읍산을 가리키며 "저 산 정상 바로 오른쪽 아래를 파보면 우물이 나올 것이요.
그러면 이 묘터의 수맥이 그리로 빠져나가 물이 안 나올 것이요"라고 일러 주었다고 한다.
이에 실제로 추읍산에 우물을 파니 세종대왕 영릉 터에 물이 사라지고 묘역을 조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하여 세조 때에 당시 귀한 산수유나무 몇 그루를 이 마을에 하사하였고 그 나무들이 퍼지면서
산수유마을의 귀한 소득원으로서 조성되게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