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난 참 외로웠다. 원래 수줍은 성격이었는데 같은 반 친구들이 못생겼다고 놀리는 바람에 삶의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말 한 마디 하는 것조차 겁이 났다. 내게 말을 시키려던 친구가 없던 건 아니었지만, 대답이랍시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힘들게 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쉽게 날 포기했다. 어느 날, 우리 반에 오신 어머니는 황당한 경험을 하신다. 내가 모르고 놓고 온 도시락을 가져오신 건데, 우리 반 친구에게 내 이름을 대니 고개를 갸웃거리더란다. “서민이요? 우리 반에 그런 애가 있었나?” 할 수 없이 어머니는 내 특징을 말씀하셨다.
“눈이 좀 작은데....” 그제야 그 친구는 그런 애가 있다면서 날 찾아줬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이렇게 존재감이 없구나, 라는 생각에 속상하셨단다.
그렇다고 내가 말을 안하는 게 편했던 건 아니었다. 나도 다른 친구들과 섞여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쉬는 시간마다 모여서 노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외로움에서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 반에서 인기가 많은 친구의 특징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남는 게 시간이었으니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다. 답은 금방 나왔다. 그건 바로 ‘유머’였다. 물론 얼굴이 잘생기거나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인기의 요인이었지만, 그건 내가 도달하기 불가능한 목표였다. 그때부터 난 유머를 삶의 목표로 정했다. 그런데 어떻게 웃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유머를 가르쳐줄 선생도, 교재도 없던 그 시절, 난 수업시간에 반 아이들을 “와!” 하고 웃게 한 말들을 교과서 뒤에다 적었고, 틈이 날 때마다 연습했다. 그렇게 2년쯤 지나자 그 유머들을 써먹고 싶어졌다. 말수가 적던 아이는 점점 시끄러운 아이로 변모하고 있었다.
문제는 유머가 갑자기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할 땐 분명히 웃기는 말이었는데, 내가 하면 아무도 웃어주지 않았다. 유머는 남을 웃길 때에만 그 가치가 있을 뿐, 웃기지 않은 유머는 그저 시끄러운 소음일 뿐이었다. 선생님한테 불려나가 혼나는 일이 잦아졌고, 급우들 또한 날 한심하게 바라봤다. 이 모든 수모를 견뎌낼 수 있었던 건 다시는 외롭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의지 덕분이리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 말에 웃어주는 친구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대학에 갔을 땐 내가 제법 웃기는 사람이 돼 있었다. 난 거기서 멈출 마음이 없었기에 유머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들과 유머연구회를 만들어 틈나는대로 유머를 겨뤘다. 못웃기는 사람을 호환. 마마 취급했고, 술을 마실 때면 웃긴 말을 한 사람만 안주를 먹게 하는 등 지옥훈련을 했다. 집에 와서는 그날 했던 말들을 복기하면서 ‘이럴 땐 이렇게 말했어야 하는데!’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2007년 6월, 선을 보는 자리에서 한 여인을 만났다. 꿈에 그리던 이상형보다 다섯배쯤 예쁜 그 여인은 내가 말을 할 때마다 흰 이를 드러내며 웃곤 했다. 프러포즈를 할 때 그녀에게 말했다. 하루에 열 번씩 웃게 해주겠다고. 그때 그녀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결혼생활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갈등이 있을 거예요. 그걸 견디게 해주는 게 저는 유머라고 생각해요. 민이씨는 그게 있어요.”
8년이 지난 지금, 우린 여전히 재미있게 잘 살고 있다. 유머밑천이 떨어져 아내가 “속았다!”고 후회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하루 서너 번 정도는 웃게 해주고 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도 30년 정도는 즐겁게 결혼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유머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재능인가? 아니면 본능과 성격적 특성이 적절히 융합된 데서 오는 결과물인가? 그것도 아니면 재미있어지는 방법을 배우거나 개인적인 시행착오를 거치는 등 후천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것인가?” - 같은 책, 51쪽
컬투의 정찬우는 방송을 할 때 아무런 사전준비 없이 사람들을 웃긴다. 6살 때 이미 동네 잔치에서 좌중을 들었다 놨다 했다니, 그에게는 분명 선천적인 재능이 있었던 셈이다. 물론 개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그 재능이야말로 그가 10년이 넘게 정상을 지키고 있는 비결이리라. 하지만 내 경우에서 보듯 유머는 후천적으로 습득할 수도 있다. 물론 재능의 도움 없이 노력만으로는, 설사 50년간 지옥훈련을 한다 해도, 정찬우나 신동엽이 될 수는 없다. 그래도 난 모든 사람이 유머를 연마하길 바란다. 유머는 당신이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며, 그건 방송에 나가 스타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일이니 말이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인문] 집 나간 책 서민 | 인물과사상사 2015.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