踏雪,서산대사,禪詩[서예] 金春剛이 좌우명 제일 좋아하는서산대사 선시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눈을 밟고 들 가운데를 가는데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모름지기 어지럽게 가서는 아니된다,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오늘의 내 발자취는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뒤따라 오는 사람에게 본보기가 될것이다 西山大師,禪詩로 白凡 金九 先生님이 愛誦詩로 널리 알려졌고 서예로도 많이 쓰여진 시다. 어른들이 행동을 잘 해야 어린 얘들이 본받아 행동을 잘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 요즘 세상 어른들이 깊이 세겨야 할 銘禪詩다. 출처-http://cafe167.daum.net/_c21_/home?grpid=o3ty
踏雪답설의 작자는 서산대사일까 ? 이양연일까 ? 우선 너무나 잘 알려진 두시를 비교하여 보자 서산대사의 시 답설(踏雪)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 눈 덮인 들판을 갈 때에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 모름지기 어지럽게 걸어가지 말지니.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라. 이양연의 시 야설(野雪) 穿雪野中去(천설야중거) : 눈 길 뚫고 들길 가도 不須胡亂中(불수호란중) : 모름지기 어지러이 가지 말라. 今朝我行跡(금조아행적) : 오늘 아침 내 발자국이 遂爲後人程(수위후인정) :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될 것이니.
단 세 글자가 틀리다. 한문학자인 정민교수등 최근 학계의 보고에 의하면, 이 시는 조선후기 문인 이양연(李亮淵, 1771(영조 47)~1853(철종 4)이 지은 것 한시연구논고에서 발표하였다. 이양연의 자는 진숙(晉叔), 호는 임연(臨淵)이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많은 책을 읽어 모르는 것이 없다는 평이 있다. 그는 조선후기의 문인으로서 호조참판을 거쳐 1852년(철종 3) 동지의금부사에 이르고, 농민들의 참상을 아파하는 민요시를 많이 지었다. 율곡 이이 선생의 학문을 평생 사모하였고, 수 백수의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 이양연의 문집인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과 장지연이 편찬한 '대동시선(大東詩選)' 등에 이양연의 이 시가 수록되어 있다고 정민교수는 주장했다. 서산대사의 문집인 '청허집(淸虛集)'에는 이 시가 수록돼 있지 않기 때문에 서산대사의 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서예가들이 서산대사의 시로 알고 휘호하였기에 혼란이 적지 않게 되었다. 생몰연대로 보면, 서산대사는 이양연보다 150년 전의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서산대사가 지었다고 전하는 시와 이양연의 시를 비교하면, 천(穿)-답(踏), 조(朝)-일(日), 위(爲)-작(作) 등의 글자만 다르고 내용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이 시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앞으로 더 많은 자료가 발굴되고 연구되어야 명확하게 판가름 날 것이다. 누가 지었느냐는 영원한 과제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내용상으로 보면, 전인미답의 눈길을 걸어갈 때는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뒷사람이 그 눈 위에 새겨진 앞사람의 발자국을 보고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사람은 똑바로 걸어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백범 선생은 하루에 세 번씩 이 시를 낭송하고 실천했다고 하니 선구자의 삶이 얼마나 철저해야하는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흰눈이 내린 길을 걸어갈 때면 위의 시는 더욱 가슴으로 스며든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 붓글씨로 이 시를 휘호하였기 때문에 김구 선생의 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학계등의 논문등과 달리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중종 15)∼1604(선조37)의 선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산대사는 조선 중기의 승려로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00명의 승병을 이끌고 활동한 승병장이었다. 속명은 최여신(崔汝信), 호는 청허(淸虛), 법명은 휴정이다.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묘향산인(妙香山人) 또는 서산대사(西山大師)로 불린다. 85세까지 살았는데 의발(衣鉢)을 대흥사에 맡겼기 때문에 대흥사입구에 그의 부도가 남아있다. 아래는 서산대사의 시다.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 번 이지러져도 본 바탕이 남아 있고,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버들은 백번 꺽겨도 새 가지가 돋는다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