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에 갔을때 간강지 구경은 맘껏 했지만 한가지 먹지못하고 돌아왔던 길거리 음식이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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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동생~
<진도대교와 울돌목(명량해협)의 여명>
야경이 더 아름다운 진도대교
우리나라 최초의 사장교(斜張橋)인 진도대교
(길이 484m, 폭 11.7m, 1984년 10월 완공)를 건너 진도타워로 간다.
진도타워는 ‘이순신명량대첩승전광장’ 옆에 명량해협(울돌목)을 굽어보며 높이 솟아 있다.
<진도타워>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에는 경찰들이 일찍 나와 진입차량을 통제하며 교통정리에 여념이 없었고,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새해 첫날 첫해를 보러 명량대첩승전광장으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이 모여든다.
<울돌목의 여명>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는 남쪽이라고는 하지만 새벽은 겨울답게 제법 춥다.
찬 기운은 옷 속을 헤집고 들어와 몸을 찌른다. 해 뜨는 방향의 바다는 여명이 밝아오는데 주변은 옅은 안개가 자욱하다.
그리고 진도대교 밑의 울돌목은 물살이 설설 휘감기며 빠르게 흐르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다.
<울돌목의 여명>
해는 구름 밑으로 조금 얼굴을 내밀다가 짙은 구름 속으로 숨으며 좀처럼 나오질 않는다.
얼굴을 내밀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리며 조용히 나의 소원을 빌어본다.
<진도울돌목의 일출>
운림산방으로 이동하여 바로 옆에 있는 첨찰산쌍계사(尖察山雙溪寺)에서 새해 첫 일정을 시작한다.
쌍계사는 해남 대흥사의 말사로 857년(신라 문성왕17) 도선(道詵)이 창건하였으며,
절 양옆으로 시냇물이 흘러 쌍계사로 불렀다고도 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맞배지붕으로 석가모니불 등 삼존불이 있으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1985년 2월 25일)로 지정되었다.
<첨찰산쌍계사 대웅전>
쌍계사 담장 쪽문을 열고나오니 바로 운림산방이다.
운림산방(雲林山房)은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小痴 許鍊, 1808∼1893)이
1856년 9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타계하자 고향에 내려와 초가를 짓고 이름을 운림각이라 하였고
거실은 묵의헌이라고 하였다. 마당에는 연못을 만들고 다양한 화훼와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리고 운림산방이란 이름은 첨찰산(尖察山, 485m)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지는 깊은 산골에
조석(朝夕)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다 하여 지었다고 한다.(*)
<운림산방>
그 후 허련이 사망하고 아들 등 가족들이 다른 사람에게 매각하고 떠나면서 옛 모습을 잃어버리자
손자가 다시 매입하였고,
그의 다른 손자인 남농 허건이 1982년에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산방으로 가는 길목에는 제법 큰 연못이 5각으로 되어 있고,
중앙에는 둥근 작은 섬에 배롱나무 한 그루를 심어 중앙을 나타낸다.
이는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가 난다)의 사상이 배려된 듯싶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고택이나 사찰의 정원에는 이런 방식이 많이 채택되어 있다.(*)
<운림산방과 연못>
남도전통미술관 옆으로 하여 잔디마당을 지나 연못을 따라 들어가면 소치가 그림만 그리던
다섯 칸 팔작지붕의 (ㄷ)자형 기와집이 운림산방이다.
첨찰산을 배산(背山)으로 하고 사천저수지를 임수(臨水)로 하여 터를 잡은 것 같다.
뒤로는 살림을 하던 집이 있다.
안채는 일(一)자형 다섯 칸 초가집으로 중앙의 안방 앞쪽으로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안채 전면 우측으로는 소치가 머물던 사랑채가 있는데 네 칸 규모의 일(一)자형 초가집이 있다.(*)
<살림집>
운림산방에서 소치의 숨결을 확인하려는 듯 툇마루에 앉아 여러 곳을 기웃거리다가 이웃에 있는 소치기념관으로 간다.
1980년에 세워진 기념관에는 5대째 운림산방의 화맥(畵脈)을 잇는 상세한 가계도가 걸려 있다.
그리고 한국화(6점)와 서예(9점), 사군자(8점), 민속유물(176점), 수석(95점), 고서(33점), 복사품(97점)이 전시되어 있다.
남종 문인화의 대가인 소치와 아들 미산 허형(米山 許瑩), 손자 남농 허건(南農 許楗)의 삼대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표시는 정유순의 “진도 찍고 목포를 가다(2016, 10)”에서 인용>
운림산방을 돌아보고 다음 행선지인 용장산성으로 간다.
용장산성(龍藏山城)은 고려 때 만들어진 곳으로 몽고군에 항복한 고려군에 반기를 든 삼별초의 기지가 있던 곳이다.
원래 삼별초는 고려 최씨정권의 별군으로 무신정권유지의 핵심 기반이었다.
강화도에서 30여 년 동안 몽고에 대항하다가 최 씨 정권이 무너지고 강화에서 개경으로 돌아가면서 삼별초는 끝까지 남아
대항하였다.
<고려항몽충혼탑>
조정으로부터 해산명령을 받은 삼별초는 배중손(裵仲孫)을 지도자로 삼고 승화후 왕온(承化侯 王溫)을
왕으로 삼아 1270년(원종11년)에 강화에서 이곳 진도로 근거지를 옮기고 쌓은 성이 용장산성이다.
진도로 거점을 옮긴 삼별초는 궁궐을 지은 다음 진도를 황도(皇都)로 정하고 장기 항전의 태세를 갖추고
대내외적으로 고려 황제를 받드는 자주적인 국가를 천명하였다.
그러나 채 일 년도 되기 전에 려·몽(麗·蒙)연합군에게 황제 왕온과 배중손이 전사하고, 김통정(金通精)은 남은 군사를 수습하여
제주도로 옮겨 끝까지 항쟁한다.
<용장성 궁궐 터>
용장성터를 옆으로 하여 화살로 사용하는 신우대 밭을 지나 가파른 산마루에 오르니 산성이 능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다.
제일 높은 용장봉(262m)에서는 사방이 확 트여 북으로는 바다 건너 해남 땅 화원반도가 보인다.
갔던 길을 되짚어 다시 내려오는 길목에는 춘란이 벌써 봄을 기다린다.
내려오면서 현재 발굴 중인 용장성터를 둘러보고 금골산으로 이동한다.
<용장성>
<용장봉>
<길섶의 춘란>
진도의 금강이라고 불리는 금골산(金骨山, 195m)은 진도군 군내면에 있는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명산이다.
주차장에서 금성초등학교 쪽으로 들어서는데, 금골산을 배산(背山)으로 한 위용이 대단하다.
운동장을 지나 좌측으로 사택이 있는 곳으로 올라서면 금골산 오층석탑이 나온다.
<금골산과 금성초등학교>
고려 후기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는 이 석탑은 해원사(또는 해언사)라는 절이 있었던 자리에 있었다고 전해지나
확실하지는 않고, 약200여m 떨어진 금골산 바로 밑에 해언사라는 절이 복원되어 있다.
그러나 학교 터를 정리하던 중 거대한 석재와 초석과 옥돌 등의 흔적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금골산에는 세 개의 굴이 있고, 산 중턱에 전남 문화재 자료인 마애여래좌상이 있으나,
지세가 험하여 감히 내려가지는 못했다.
정상에 올라 사해를 둘러보고 다시 같은 길로 내려와 해언사에 들른다.
<금골산 정상>
해언사의 유래는 기록된 것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대웅전에 심검당(尋檢堂)과 백화당(白華堂)의 전각이 배치돼 있다.
그리고 심검당 뒤로 조그마한 불상이 모셔진 석굴이 있으며, 대웅전 옆 언덕에는 나한(羅漢)상이 자리를 지킨다.
해언사에서 나오면서 마시는 한 잔의 물은 지난해의 묵은 때를 깨끗이 씻겨내고
새로운 해의 희망을 새롭게 각인하는 청량제였다.
송구영신(送舊迎新)∼∼
<해언사 대웅전>
<석굴>
<나한상>
저기 사진에 잘 보이진 않지만...물의 흐름이 20노트(시속37km)이상 빠른 곳이다..
오죽하면 큰배가 지나간줄 착각했으랴...
여기 이 울둘목의 물때를 이용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기적과 같은 승리를 한곳..
(난중일기에 장군은 이 승리를'천행'이라고 표현)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나라를 지키기위해 애쓰신 조상들께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여기서부터 진도군청에서 나오신 해설사 허상무님의 구수한 남도타령과 더불어 우리의 역사기행은 시작되었다..
고려 삼별초의 혼이 어린 용장산성....
고려원종때 강화에서 몽고군과 굴욕적인 화친을 하고 다시 개경천도를 결정하자
배중손이 선두로 1000척의 배를 이끌고 70여일간의 항해끝에 도착한 진도에
9개월만에 둘레가13km에 달하는 왕궁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렇듯 돌만 남아 그 흔적을 남기고 그 기둥과 뿌리는 몽고의 앞잡이가 되어 내려온 홍다구란 장수
(감은사랑 황룡사도 불태운 장본인)에 의해 불타고 아무것도 남기지않았다
진도란 곳이 민족의 아픔이 그리도 많은 섬인줄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이렇듯 몽고군의 침략을 받아 몸살하고도 모잘라 정유재란때는 임진왜란때의 복수를 위하여 전 섬사람을 몰살했다는.....
또 고려말에는 왜구의 잦은 출몰로 섬전체를 다 비우고 떠돌다가 세종대왕때서야 도로 고향으로 돌아온 아픔까지..
성경에 유태인들의 오랜 방랑생활만 알았지 우리 민족에게도 이런 뼈아픈 역사가 있다는걸 몰랐다니...
가슴 한켠 조상들께 죄스런 마음이....
용장사 절에 모셔진 약사여래..땅에 아무렇게나 파묻혀 있던것을 마을주민들이 다 내고 절을 세워서 모신다함
남도의 유명한 화가 남농선생의 뿌리가 되는 소치 허련선생이 말년에 기거하며 보냈다는 운림산방
그 연못은 영화스캔들을 촬영한곳이란다..
5대째 그림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인 운림산방서 하는 다시래기 공연을 보러 도착하였다
진도에 許(허)씨가 정착하게된것은 임해군이 귀양왔을때 따라내려왔다가 정착한 조상덕분이라
해설사 이야기해주심
진도의 상징인 진도대교 명랑 대첩지인 울돌목 위에 놓여있다
울돌목이란 소리 내어 우는 바다 길목이란 뜻이라 한다
진도 타워
진도타워는 정유재란 당시 이 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했다
전망대와 진도군 홍보관 역사관 특산물 판매장 휴식공간 등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다
7층 전망대에서는 울들목 세방 낙조 월출산 두륜산 등 진도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운림산방 점심 식사 후 운림산방으로 향했다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 선생이 말년을 보낸 곳이라 한다
이곳은 소치 허유 미산 허영 남농 허건 임전 허문 등4대에 걸친 전통 남화를 이어준 산실이기도 하다
예전 목포에 살 때 남농 허건 선생의 작품은 접한 적도 있고 소장도 했기에 특히 관심 있게 보았다
소치기념관 진도 역사관 등이 있으며 4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서화 50여 점이 전시되어있다
진도개 테마파크 진도의 명물 진도개를 보기 위해 진도개
선수촌에도 들러봤다 진도개도 훈련시키고 진도개 공연도 하고 있었다
장전 미술관
서예가 장전 하남호 선생이 사비로
세운 3층 건물의 미술관이다
고서화 조각 자기 등 국보급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각 층별로 작품 전시를 차별화해
전문가부터 일반인 또 아이들까지 다양한
계층이 이용할 수 있는 예술공원이다
남도 진성(서망항)
삼별초가 진도에서 몽골과 항쟁을 벌일 때
해안지방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동 서 남문이 있던 자리가 잘 남아 있으며
유적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한다
세방 낙조
한반도에서 가장 늦은 해넘이를 볼 수 있는
세방 낙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세방 낙조는 다섯 가지 색깔이 펼쳐져
오색 낙조라고도 한다
소포 전통 남도소리 체험
저녁식사 이후에는 소포 전통 남도소리
체험이 있었다
특별한 분들이 아닌 평범한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살아오신 삶의 애환이 담긴
가락을 경험했는데 마지막엔 모두 함께
강강술래를 부르며 흥겨운 자리를 끝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린 배를 타고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중 아름답기로 유명한 매화의 섬
관매도로 갔다
첫발을 내디디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탄하게 한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랄까?
과거 호수였던 관매도엔 목재 화석(규화목)을
볼 수 있는데 나무 한그루가 그대로였지만 지금은
훼손되어 윗부분만 남아있다
더 이상의 훼손이 없도록 이 소중한 자원을
아끼고 보존하는데 우리 모두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호마을의 울타리역할을 하는 우실
마을을 보호하는 문이기도 하지만 상여가
나갈 때 산자와 죽은 자의 마지막 이별 공간
으로도 여겨진다고 적혀 있어 읽으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관매도 3경인 꽁돌과돌묘
꽁돌 아래가 사람 손바닥 모양으로 움푹
파여있고 꽁돌 앞에는 왕의 묘같이
생긴 돌묘가 있다
하늘다리
바위산 중심이 칼로 자른 듯 갈라져 있는 곳에
하늘다리가 있다 방아섬에서 방아 찧던
선녀들이 날개를 벗고 쉬던 곳이라 한다
돌담길 삼거리 내가 보기에도 어느 곳으로 갈까
관매도 해송숲 관매도의 트레이드마크이자 보물 숲인 해송숲은
2010년 아름다운 숲 전국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전문가들은 치유와 명상의 숲으로 조성하면
전국적 명소가 될 것으로 입을 모으고 있다
나 또한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힐링이 되는것 같다
수령 300년의 천연기념물인 후박 나무
관매도 해변
백사장의 모래가 곱고 수심이 얕아 여름 피서지로
적합하며 청정해역과 아름다운 비경이 숨어있는
관매도 해변에서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하며
어린아이처럼 뛰어놀았다
진도 여행을 끝내며 우리나라에 이렇게 때묻지 않은 천혜의 숨은 비경을 가진
진도가 있는 것에 가슴 벅찬 기쁨 같은 안도가 남는 건 예전부터 진도를 사랑했던 마음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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